도시의 웅성거림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저의 마음은 깊은 곳으로부터 한 조각의 자연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치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잊고 지냈던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찾아 헤매었지요. 사진 촬영을 통해 세상을 담아내고, 수필로 사색의 흔적을 남기며, 카드뉴스로 아름다움을 나누는 일련의 창작 활동을 하면서도,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영감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 곳은 바로 강원도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 길이었습니다. 태곳적 지구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에서, 저는 어쩌면 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 길 위에서, 시간의 강물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과 마주하며, 제 안의 오래된 감성들이 잔잔히 깨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길 위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경이
순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묵은 피로를 씻어내는 듯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시야를 압도하는 웅장한 협곡의 모습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길게 뻗은 잔도는 마치 인간이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겸허히 내어놓은 작은 경의의 표식 같았지요. 한 발 한 발 잔도 위를 내딛는 순간, 저는 발아래 펼쳐진 풍경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수억 년의 지구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살아있는 지질 교과서와 다름없었습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 주상절리대는 약 50만 년 전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흐르면서 급격히 식어 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용암은 최소 100m가 넘는 두께로 강 계곡을 메웠고,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강줄기가 다시 깊게 파이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주상절리 협곡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검붉은 현무암 절벽들은 각진 육각형과 오각형 기둥 모양으로 정교하게 솟아 있었는데, 이는 용암이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으로 갈라진 자연의 신비로운 조형물입니다. 마치 거인이 깎아 놓은 거대한 돌 병풍 같기도 하고, 어떤 곳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서가 같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향과 크기로 얽혀 있는 이 주상절리들은 살아 숨 쉬는 지층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 옛날 뜨거운 용암이 차가운 강물과 만나 겪었던 격렬한 변화의 과정을 무언의 언어로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스카이 전망대에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아득히 깊은 강물이 휘감아 흐르는 모습은 아찔함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고요히 흐르는 강물 위로는 철새들이 한가로이 날아다니고, 멀리 숲에서는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습니다. 강물이 오랜 시간 바위를 깎아내며 만든 크고 작은 폭포와 소용돌이는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움직임을 여실히 보여주었지요. 햇살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주상절리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때로는 검은색으로 웅장하게, 때로는 붉은빛으로 따뜻하게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습니다. 문득, 인간의 짧은 생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간의 흐름 앞에서, 저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지만, 동시에 이 위대한 자연의 일부로서 깊은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의 경이로움 앞에서 느끼는 진정한 감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걸음마다 스며드는 이야기
총 길이 3.6km,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이 길은 순담 매표소와 드르니 매표소 두 곳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순담 게이트에서 시작하여 드르니 게이트 방향으로 걸었지만, 돌아오는 번거로움 없이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출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편리했습니다. 매표소마다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버스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체력적인 부담 없이 완벽한 자연 속 몰입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방문객들이 오롯이 자연과의 교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저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행위 자체가 깊은 명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하나하나, 발아래 느껴지는 흙의 감촉,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귀를 스치는 강물 소리까지, 모든 감각이 온전히 깨어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거친 바위틈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작은 들풀과 나무들의 강인함은 저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삶의 끈기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위에 비치는 햇살의 반짝임, 그리고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새들의 날갯짓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펼쳐지며, 저의 모든 신경을 자연의 언어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이야기가 되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때로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숨을 헐떡이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강변 길을 따라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지루함이나 고통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발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은 더욱 평온해지고, 복잡했던 생각들은 점차 정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발걸음마다 오래된 지구의 역사와 자연의 생명력이 깊이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수필가로서 늘 새로운 소재를 찾고 기록하기를 즐겨 하는 저에게, 이 길은 실로 영감의 보고와 다름없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발로 느끼고, 마음으로 담아내는 모든 것이 귀한 이야기가 되어 제 안에서 새롭게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 주는 이러한 직접적인 경험은 그 어떤 책이나 영상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와 깊은 울림을 주었고, 저의 창작 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소중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제 안의 감성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어떤 수필로 이 감동을 기록할지, 어떤 사진으로 이 순간을 담아낼지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억에 새겨진 평화와 여운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끝자락인 드르니 게이트에 다다랐을 때, 저는 육체적인 개운함과 함께 정신적인 평화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주했다는 작은 성취감과 더불어, 대자연의 품 속에서 온전히 치유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고요함과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되찾은 듯했습니다. 주상절리의 웅장함과 한탄강의 고즈넉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제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깊이 새겨졌습니다.
특히,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에서 저는 한결같은 평화로움과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친구, 혹은 홀로 걷는 이들 모두가 저와 같은 감동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낄 때,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함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를 터뜨리며 나누는 정다운 대화는 그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깨닫는 동시에,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장엄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얻은 새로운 시각과 깊은 사색은 앞으로 저의 수필과 카드뉴스 등 다양한 창작 활동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줄 것입니다. 어쩌면 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이야말로 제가 추구하는 '수필 완성도를 높이기'와 '카드뉴스 제작'이라는 목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길이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 소중한 여정이었음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얻은 영감들은 앞으로 저의 작품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고, 사진 촬영에도 깊이 있는 시선을 더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만약 자연의 품속에서 진정한 휴식과 깊은 영감을 찾고 계시다면,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꼭 한번 방문하시어 대자연이 주는 위로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귀한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진심으로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