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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방 소도시의 숨겨진 서점·책방 탐방기 -현진-

by 현진코코 2025. 9. 27.

 

지방 소도시의 숨겨진 서점
지방 소도시의 숨겨진 서점

여행지에서 만난 의외의 풍경 – 작은 책방의 매력

 

사람들은 흔히 ‘책방’ 하면 서울의 대형 서점이나 유명 독립서점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의외로 지방 소도시의 작은 서점에서 느껴진다.

얼마 전 주말을 맞아 한적한 소도시를 여행했다. 사실 특별한 목적은 없었고, 그저 바람을 쐬고 싶어 떠난 길이었다. 그런데 낯선 골목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간판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낡은 목재 간판에 ‘○○서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기계음도, 번쩍이는 조명도 없는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나무 책장이 빽빽하게 서 있었고, 책 사이사이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배어 있었다. 요즘 대형 서점에서는 찾기 힘든 ‘온기’가 그곳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손님도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책방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조용히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말은 걸지 않았지만, 그들이 오래도록 이 공간을 지켜온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이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의 기억과 시간을 담아내는 창고 같았다.

 

대형 서점에는 없는, 작은 책방만의 이야기

 

지방 소도시의 서점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규모가 작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작음 속에서 대형 서점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가치가 피어난다. 먼저, 책의 배열이 다르다. 대형 서점이 최신 베스트셀러를 앞세운다면, 작은 책방은 주인의 취향과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선별된 책들로 채워져 있다. 한쪽에는 지역 문학인의 시집이 꽂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래된 역사 자료집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지역 작가 코너’였다. 서울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이름이지만,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 책을 들춰보니 마치 그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책방이 곧 문화 공간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가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열기도 하고, 시낭송회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형 서점이 ‘소비의 공간’이라면, 작은 책방은 사람이 모이고 추억을 쌓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책방이 그 자체로 ‘사람의 손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 표지에 붙은 손글씨 메모, 직접 만든 책갈피, 오래된 서점 도장이 주는 작은 기쁨은 대형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흔적이었다.

 

책방이 남기는 것 – 기억과 연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 서점이 이렇게 마음에 남을까?”

사실 책을 많이 산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머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작은 공간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도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은 책이 아니라 이야기와 기억을 파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의 숨겨진 서점은 단순한 책 판매점이 아니다.
동네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쉼표가 되고, 여행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발견을 선물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날 그 책방에서 맡았던 종이 냄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대형 서점은 수많은 책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작은 책방에서 우리는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시간이 쌓아올린 이야기다. 나는 그날 이후 여행할 때면 일부러 작은 책방을 찾아보려 한다. 책을 사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 공간이 가진 고유한 온기와 이야기를 마주하는 경험이 여행의 기억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작은 책방을 찾아가는 이유

 

지방 소도시의 서점은 겉으로 보면 낡고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대형 서점처럼 반짝이는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정리된 베스트셀러 진열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외관 속에는 대형 서점이 절대 줄 수 없는 사람 냄새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책방의 낡은 책장에는 주인의 손길이 남아 있고, 책마다 흘러간 시간의 층위가 묻어 있다. 어떤 책은 햇볕에 바래어 표지가 누렇게 바뀌었고, 어떤 책은 오래된 연필 밑줄이 남아 있어 누군가의 고민과 감정을 엿볼 수 있다. 그 흔적들은 마치 무명의 독자들이 남기고 간 작은 기록들이자, 시간이 쌓아 올린 조용한 역사처럼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도 물론 즐겁다. 화려한 랜드마크, 맛집, 사진 찍기 좋은 명소는 늘 사람들로 붐비고, 여행의 활기를 더해준다.


그러나 가끔은 발길을 돌려, 작은 골목 어귀에 숨어 있는 책방에 들어가 보자. 책장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은 단순한 종이 뭉치를 넘어, 여행자가 그 도시와 맺는 특별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책방 주인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느낄 수도 있고, 오래된 책 속 삽화에서 과거의 시간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런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기기 어려운 기억이지만,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따뜻한 잔상으로 남는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사람의 기억과 삶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책을 고르며 머뭇거리는 손길,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가끔 흘러나오는 주인의 인사말 한마디까지… 모두가 모여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방 소도시의 숨은 책방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그곳은 단순히 소비의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통로이며,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 같은 곳이다. 앞으로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책방들은 하나둘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빈 건물이 아니라,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발을 디딜 때, 문득 떠오르는 건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좁은 골목 끝에서 만난 그 책방의 향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행길에 작은 책방을 찾아 들어가는 일은, 단순한 독서 행위가 아니라 삶의 기억을 수집하는 특별한 여행법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지방 소도시의 숨은 책방들은 앞으로도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남아 따뜻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