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의 가을은 남다르다. 육지의 가을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시선을 잡아끈다면, 제주의 가을은 그 청량한 공기와 쪽빛 바다, 그리고 유구한 세월이 빚어낸 오름과 돌담이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올해는 유난히도 그 깊이를 가늠하고 싶어 쇠소깍으로 향했다. 나이 칠십에 다다른 나는 그저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젊은이들처럼 무언가 ‘액티비티’를 즐겨보고 싶은 엉뚱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봤자 카누 타기인데, 내게는 그것도 제법 큰 도전이요 설렘이다.
검은 현무암 절벽
쇠소깍에 들어서는 순간,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현무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좁은 물길, 그 위로 옥빛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풍경은 영락없는 비경이었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바로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의 민물과 드넓은 태평양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라 했다. 어허, 이거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평생을 다른 곳에서 흐르다 마침내 한곳에서 만나 부드럽게 섞이는 물줄기라니. 굽이굽이 인생을 살아온 내 삶과도 겹쳐 보이는 듯하여 괜스레 감상에 젖어들었다. 칠십 평생 이런저런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진정으로 섞이고 스며든 인연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쇠소깍 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나가 되는 것이 인생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후후..
강물이 흐르다 바다를 만나 섞이는 곳, 그래서인지 물빛은 오묘했다. 민물의 투명함과 바닷물의 푸른색이 뒤섞여 비취색을 띠는데, 햇살이 닿는 곳마다 반짝이며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냈다. 마치 수천, 수만 년을 흐른 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했다. 이곳의 비경은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물 위에 띄워진 투명 카누에 몸을 실어 직접 그 물길을 느껴봐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들 했다. 나이 들어서 이런 물놀이라니, 체력이 될까 싶기도 했지만,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는가.
물 아래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 카누
투명 카누에 오르니 생각보다 안정감이 느껴졌다. 물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바닥 덕분에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노를 저으니 제법 묵직했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물길을 따라 나아갈수록 현무암 절벽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내린 소나무들은 고요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바위틈 사이로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는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 녀석들, 민물고기일까, 바닷물고기일까. 아니면 두 물에 다 적응한 ‘잡종’일까. 허허, 이런 상념에 잠기는 것 또한 나이 든 수필가의 특권 아니겠는가.
가을 햇살은 또 어찌나 포근하던지. 따사로운 온기가 팔과 얼굴에 스며들었다. 여름의 뜨거움과는 달리 한없이 부드러운 가을 햇살은, 마치 삶의 황혼기에 찾아오는 평온함 같았다. 젊을 때는 햇살이 마냥 뜨겁고 강렬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온기 속에서 위안을 찾게 되니 참으로 세월의 장난이란! 노를 젓는다는 핑계로 느릿느릿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카누에 몸을 맡기니, 세상의 온갖 시름이 저 멀리 밀려나는 듯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내 손에는 어느새 노가 쥐여져 있었고, 복잡했던 머릿속은 오직 물소리와 바람소리로 가득 찼다. 이런 평화가 얼마 만이던가. 어디선가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떠나 따뜻한 남쪽으로 향하는 소리일까. 새들도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자신의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참으로 의연해 보였다. 나 또한 이즈음 되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만 새들처럼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가르며 가벼이 갈 수는 없겠지만, 쇠소깍의 투명한 물길 위에서처럼, 욕심 없이 느릿느릿 흘러가듯 살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카누를 타고 물 위에서 올려다본 쇠소깍의 풍경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마치 거대한 자연 속에 조용히 안긴 작은 존재가 된 듯했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흰 구름은 그림처럼 떠 있었으며, 그 아래로는 짙은 초록빛의 나무들이 굳건히 서 있었다. 때로는 거센 파도처럼, 때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때로는 이 쇠소깍의 물길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인생임을 새삼 깨닫는다. 거친 풍파를 겪어왔기에 지금의 평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한참을 그렇게 물 위에서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쇠소깍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노 젓는 팔이 조금 쑤시긴 했지만, 몸의 피로 따위는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셀카를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저 시절에는 카메라 한대 들고 열심히도 쏘다녔지 싶었다. 이제는 눈으로 담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해진 나이. 쇠소깍에서의 이 시간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밖에서 다시 쇠소깍을 바라보니
물에서 나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다시 쇠소깍을 바라보니,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그 경계선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충돌하지 않고 아름답게 섞여 새로운 조화를 이루는 곳.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생각,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쇠소깍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진부할지 모를 생각까지 해봤다. 하지만 나이 들면 진부한 것들이 오히려 더 큰 위로와 깨달음을 주지 않던가. 허허.
제주의 가을, 쇠소깍에서 노를 저으며 얻은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투명한 카누 바닥 아래로 비치는 물속 세상처럼,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흐름을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몸은 비록 칠십의 노인네지만, 쇠소깍의 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가을 햇살을 품듯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로 늙어가고 싶다. 쇠소깍의 잔잔한 물결 위에서 나는 또 다른 가을을 맞이했고,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이토록 고요하고도 풍요로운 하루라니. 이걸로 됐다, 이만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