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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에게 받은 '하얀 거짓말' : 사흘 만에 다시 오른 이유

by 휘준story 2026. 1. 19.

 

이 산이 강원도 어디쯤 있다면 더 유명할 텐데. 같은 산을 사흘 만에 두 번 오른 사연.
윗 사진은 25.12.02일 오른 사진이고, 아래는 25.12.05일 오른 사집입니다.

백운대 다녀와서 배낭을 푸는데, 사흘 뒤에 첫눈 온다는 뉴스가 들렸습니다. '다시 가야 하나?' 하고 오른 산인데, 눈이 없어 허탈했습니다.

도심에는 천둥 번개까지 치며 눈이 오길래, 큰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뒤춤에 넣고 온 배신감.

집에서 다리 운동을 한 달씩하고 가도 꼭 근육통에 걸리는 백운대에서, 아이젠&스패치 차고 힘들었으나 원하는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동네엔 눈이 많은데 반대로 산은 빈약하고 햇빛도 반대여서, 정이 뚝 떨어진 서운함에 한 말씀 올렸습니다.

 

근육통과 맞바꾼 25.12.02의 백운대, 그리고 뜻밖의 예보


서울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백운대는 늘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동네 뒷산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라, 이번에도 집에서 한 달 가까이 스쿼트와 계단 오르기로 다리 근육을 다졌습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지난 12월 2일, 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섰습니다. 깎아지른 암벽과 발아래 펼쳐진 도심의 풍경은 언제나처럼 장엄했습니다.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 때까지만 해도, 당분간 산행은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빳빳하게 굳어가는 종아리 근육이 "고생했다"며 말을 걸어왔거든요. 그런데 그날 저녁, TV 뉴스 자막이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사흘 뒤 전국적인 첫눈 예보'.

산쟁이의 마음은 참으로 갈대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 무거운 배낭을 던져두고 한숨을 돌렸건만, '첫눈 덮인 백운대'라는 단어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가야 하나?" 하는 물음표는 이미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강원도 설악산이나 오대산이었다면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렸겠지만, 서울 도심에서 만나는 설경은 그 나름의 호사스러운 매력이 있으니까요.

 

천둥 번개를 뚫고 간 25.12.05, 배신감으로 돌아온 산길


드디어 12월 5일, 창밖은 소란스러웠습니다. 도심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천둥 번개가 울려 퍼졌고, 눈송이가 굵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백운대는 겨울왕국이 되어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시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겼습니다. 지난번 산행의 근육통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하얀 눈꽃 터널을 상상하며 북한산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질세라 아이젠을 단단히 차고, 스패츠로 바지춤을 조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한 달간 다리 운동을 했음에도 백운대의 가파른 오르막은 여전히 숨을 턱 끝까지 차오르게 하더군요. 하지만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상계와 하계가 만나는 그 신비로운 설경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제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도심에는 그렇게 쏟아지던 눈이, 산 위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야박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센 바람이 눈을 다 쓸어 가버린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장난을 친 것인지. 제가 꿈꿨던 순백의 세상 대신 차가운 바위 얼굴만 덩그러니 저를 맞이했습니다.

 

정이 뚝 떨어진 서운함,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산'인 것을


정상에 서서 카메라를 꺼냈지만, 셔터로 향하는 손가락이 머뭇거렸습니다. 며칠 전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무채색의 바위들. 동네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인데, 정작 '진짜 설경'을 기대했던 이곳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야속하게도 햇빛마저 반대 방향에서 내리쬐며 제가 원했던 구도를 방해했습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아이젠과 스패츠까지 중무장하고 올라온 노력이 허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산은 사람의 기대를 먹고 자라는지, 아니면 사람의 기대를 비웃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컸습니다. "이 산이 강원도 어디쯤 있었다면 훨씬 대접받고 눈도 많이 왔을 텐데" 하는 엉뚱한 원망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사흘 만에 같은 산을 두 번이나 오르며 무릎을 혹사시킨 결과가 고작 이 차가운 바람뿐인가 싶어 정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산 길에 무거운 다리를 끌며 생각했습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욕심을 부린 것은 나였다는 사실을요. 내가 원하는 풍경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북한산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인생샷'은 건지지 못했고 아이젠은 무거운 짐이 되었지만, 이 서운함 또한 산이 주는 교훈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배낭을 풉니다. 근육통은 두 배로 찾아오겠지만, 아마 며칠 뒤 또 다른 눈 소식이 들리면 저는 다시 아이젠을 챙길지도 모릅니다. 산에 대한 서운함은 결국 더 깊은 애정의 다른 이름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