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않고도 멀리 다녀오는 법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깥 소리를 낮추는 종소리가 있습니다. 문간에서 한 번, 성수대 앞에서 한 번 더 호흡을 고르고, 마당 끝 벤치에 앉습니다. 그 벤치는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가집니다. 여름엔 그림자 아래 숨을 쉬고, 겨울엔 나무결이 얇게 얼어 있습니다. 그 표정들을 여러 번 마주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지나친 것은 먼 바다가 아니라, 가까운 벤치였다는 것을요. 우리는 흔히 여행을 지도의 끝자락으로 미뤄 두지만, 여행의 본질은 거리보다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배웁니다. 멀리 가야만 넓어지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이 벤치에도 앉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벤치 앞에는 오래된 회양목이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줄기에 박힌 나이테의 주름은 고요하지만, 가지 끝마다 새로 돋는 설렘이 있습니다. 나무를 오래 보고 있으면, 공항을 떠올리던 마음이 슬며시 내려앉습니다. 수많은 이륙과 착륙, 환승과 지연, 출입국 심사와 면세점의 불빛. 그 화려한 이동을 부러워하던 나의 시간에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멀리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행 시간의 길이인가, 아니면 마음이 낯섦을 받아들이는 깊이인가. 회양목은 대답 대신 바람을 보여줍니다. 바람은 구름의 도착지를 묻지 않습니다. 지나가며 잎을 흔들고, 그 흔들림이 이곳의 계절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 바람 앞에서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여행의 우열을 거리로 재려 했던 조급함, 멀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믿어버린 습관. 그 습관을 벗기자, 이 벤치가 지도가 됩니다. 늘 앉던 자리에서 세계가 펼쳐집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마당을 가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납니다. 기도하러 온 사람, 지나가다 그늘을 빌리는 사람, 유모차를 밀며 잠시 앉는 사람. 각각의 발걸음은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언어는 같아도 사연의 기후가 다르고, 표정의 지형이 다릅니다. 한 아이가 벤치에 앉아 신발끈을 묶습니다. 그 작은 동작을 보며 어린 날의 운동회가 떠오르고, 이어서 해 질 녘 운동장 냄새, 먼지와 땀이 섞인 여름의 공기가 기억 속에서 열차처럼 지나갑니다. 한 장면이 다른 장면을 끌고 오고, 그 장면들이 서로 맞물려 한 나라를 만듭니다. 그 나라는 푸른 산과 넓은 강으로만 구성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교과서의 냄새, 우유팩의 종이맛, 손등에 남은 분필가루까지 섞여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저는 벤치 위에서 국경을 넘습니다. 비자도 없고, 면세점도 없지만, 분명히 다른 시간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여행이 멀수록 좋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가끔 지치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먼 길은 잠시 우리의 역할을 내려놓게 해주고, 낯선 공기는 익숙한 자아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쉬어감은 가까운 곳에서도 가능합니다. 성당 벤치에 앉아 가끔 고개만 들어도, 하늘의 표정은 매일 새롭습니다. 구름이 북쪽으로 흐르는 날이면 냉랭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고, 남쪽으로 눕는 날이면 묵직한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의 풍향계도 움직입니다. 멀리 가야만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변화를 맡길 의자 하나만 있어도, 마음의 지도는 업데이트됩니다. 그 의자가 오늘의 벤치입니다.
벤치 위에서 펼친 세계지도, 낯섦의 좌표 찍기
벤치에 앉아 메모장을 펼칩니다. 표지에 세계지도를 그려 본 적이 있습니다. 대양을 푸르게 칠하고, 대륙을 옅은 갈색으로 칠하고, 도시마다 점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게 그려봅니다. 위도와 경도 대신, 낯섦의 좌표를 찍습니다. “오후 햇빛이 건물 벽에 만드는 사선 그림자: 위도 37.5, 낯섦 3.” “종소리와 비둘기 날갯짓이 겹치는 순간: 경도 127.0, 낯섦 6.” “옆자리 노인의 묵주 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리듬: 낯섦 8.” 낯섦의 좌표는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 갑자기 고개를 드는 틈입니다. 그 틈에 눈을 맞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도가 촘촘해집니다.
낯섦을 기록하는 법은 여행 가방을 싸는 법과 닮았습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어깨가 아프고, 너무 적게 넣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정합니다. 오늘의 지도에는 다섯 점만 찍자. 그 다섯 점을 위해 천천히 눈을 빌려줍니다. 첫 번째 점은 향기입니다. 성전에서 새로 갈아끼운 초의 냄새,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남은 종이의 잉크 냄새, 누군가가 들고 온 작은 꽃다발에서 나는 이파리의 습기. 두 번째 점은 소리입니다. 종의 울림이 돌벽을 맞고 돌아오는 시간차, 아이의 웃음이 가리킨 검은 고양이의 구름 같은 울음, 바람이 제단 쪽 문을 툭 닫는 소리. 세 번째 점은 빛의 움직임, 네 번째는 손의 움직임, 다섯 번째는 침묵의 밀도. 이렇게 분류해 놓으면, 같은 자리에서도 매번 다른 여행을 떠납니다. 지도의 색이 매일 달라집니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벤치 등받이에 가늘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비는 먼 나라의 문자 같았습니다.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지만, 리듬이 있었고 문법이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같은 자리로 여러 번 떨어지면 나무결이 짙어지고, 번짐이 생기며, 번짐이 또 다른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날의 지도에는 “번짐의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번짐의 나라에서는 규칙이 바뀝니다. 계획이 흐려져도 실패가 아니고, 모양이 흐트러져도 아름답습니다. 그 규칙은 돌아보면 삶에도 적용됩니다. 정확한 선을 그을 수 없는 날들, 목표가 희미해지는 계절, 관계가 선명하지 않은 시간들. 번짐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날 벤치에서 배웠습니다.
또 한 번은, 벤치를 사이에 두고 낯선 청년과 마주 앉았습니다. 서로 말을 섞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손바닥의 말 없는 힘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가끔, 얼굴을 접어 넣어야 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울음과 기도, 그리고 고단한 숨 고르기. 청년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따뜻한 자국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 자국을 지도에 점으로 찍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견디는 섬.” 그 섬은 어느 바다에서도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버거운 표정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 섬에 불을 켭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밤, 불빛 하나만으로도 배가 방향을 찾는다는 것을 믿으면서요.
가까운 자리에서 넓어지는 마음, 오늘 써 내려갈 경로
여행이 멀수록 좋다는 말은, 어떤 자유를 향한 동경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자유는 우리를 바깥으로 데려가고, 바깥은 우리를 다시 안으로 되돌립니다. 성당 벤치의 여행도 다르지 않습니다. 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돌아갈 길이 달라졌습니다. 발걸음의 속도가 바뀌고, 시선의 높이가 낮아지고, 말의 양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넓이입니다. 벤치에서 마주친 낯선 이들이 제 일상의 인물들과 겹칠 때, 저는 덜 판단하고 더 기다립니다. 누군가의 침묵은 대답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방식일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불친절은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 태풍의 가장자리일 수 있으니까요.
가까운 자리에서 넓어지는 마음은 실천으로 증명됩니다. 저는 벤치에서 배운 것을 하루에 세 가지로 번역해 봅니다. 첫째, 길 위에서 한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양보하기. 작은 이동이지만, 그 이동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숨을 쉽니다. 둘째, 대화에서 설명을 줄이고 질문을 하나 더 남기기. 질문은 신뢰의 통로가 됩니다. 셋째, 오늘의 지도를 기록하기. 다섯 점의 낯섦, 혹은 하나의 번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기록은 마음의 나침반을 북쪽으로 돌려놓습니다. 다음 날 다시 길을 잃더라도, 나침반은 쉽게 고장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벤치의 전도를 조용히 상상합니다. 도시 곳곳의 작은 성당들, 공원 구석의 낡은 의자들, 도서관 창가의 기다란 벤치들. 그 자리마다 누군가 앉아 자기만의 지도를 펼칩니다. 각자의 지도가 겹치고 겹쳐, 눈에 보이지 않는 대륙이 생겨납니다. 이름은 없습니다. 다만 그 대륙의 기후는 분명합니다. 느린 속도, 낮은 목소리, 그리고 타인의 사연을 무리하게 채굴하지 않는 예의. 이 기후 속에서 우리는 더 멀리 가지 않아도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멀어짐의 기술이 아니라, 가까움의 용기로.
하루가 기울 때, 벤치 옆 가로등이 켜집니다. 빛은 흰 종이처럼 마당을 덮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문장처럼 길어집니다. 저는 가만히 그 문장들을 읽습니다. “오늘도 잘 버텼다.” “내일은 더 부드럽게.” “서두르지 말 것.” 성당 종탑 위로 달이 떠오르면, 세계지도는 초승달 모양의 바다를 품은 채 접힙니다. 접힌 지도는 주머니에 들어가고, 주머니의 온도가 지도를 데웁니다. 그 온기가 내일의 여행을 약속합니다. 멀리 가는 표를 사지 않아도, 벤치 하나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떠나기보다 앉는 법을 아는 것, 도착하기보다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돌아서 나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벤치를 바라봅니다. 빈 자리 위로 얇은 먼지가 내려앉습니다. 그 먼지는 내일의 낯섦이 될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시 지도를 펼칩니다. 오늘 찍은 다섯 점을 따라 선을 긋고, 선과 선 사이에 작은 배를 띄웁니다. 그 배의 이름은 “기다림”. 기다림은 더디지만, 언제나 가장 멀리 데려다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알아봅니다. 여행은 멀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깊을수록 좋은 것임을. 깊이는 거리에 지지 않습니다. 벤치 하나, 조용한 종소리 하나, 그리고 마음이 한 번 더 낮아지는 순간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내가 발견한 세계지도의 마지막 범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