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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낡은 기와 사이로 피어오르는 다정한 초대, 익선동 한옥거리

by 휘준story 2026. 2. 7.

익선동 한옥거리

좁은 골목이 품은 거대한 위로, 익선동의 첫인상


서울의 중심부에 이런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운 곳, 익선동입니다. 낮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도심의 빌딩 숲이 주는 위압감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겨울의 익선동은 그 좁은 길목마다 사람들의 입김과 음식 냄새, 그리고 오래된 나무가 내뿜는 특유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삭막한 계절이라 하지만, 익선동의 골목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밀도가 높습니다. 서로를 비켜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까움'의 미학을 가르쳐줍니다.

 

이 좁고 정겨운 골목을 배경으로 교회 토퍼를 꺼내 봅니다. 한옥의 검은 기와와 흰색 창호지가 만드는 정갈한 색감은,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줘야 할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높고 웅장한 담장이 아니라, 누구나 고개를 숙여 들어올 수 있는 낮은 문턱 같은 곳 말입니다. 익선동의 한옥들은 비록 낡고 작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단단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소박한 생명력이 오늘날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뉴트로의 물결 속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묻다


요즘 익선동은 '뉴트로'의 성지라고 불립니다. 낡은 한옥을 개조해 세련된 카페와 상점이 들어선 모습은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공존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옛것의 투박함 속에서 세련됨을 발견하고, 오래된 것의 불편함 속에서 낭만을 찾습니다. 겨울바람을 피해 들어간 어느 한옥 카페의 서까래를 올려다봅니다. 수십 년 전 어느 목수의 손길이 닿았을 그 나무 기둥은, 이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내는 일, 그것이 익선동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토퍼에 담긴 메시지도 결국은 '변하지 않는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트렌드가 눈 깜짝할 새 바뀌고 모든 것이 소모되는 시대에, 100년 넘은 한옥이 주는 안정감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됩니다. 익선동의 낡은 벽면 옆에서 토퍼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전하는 이 오래된 기쁜 소식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할수록, 사람들은 이 낮고 평온한 지붕 같은 안식처를 더 갈망하게 될 테니까요. 익선동의 겨울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신앙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다가옵니다.

 

골목 끝에서 만난 진심,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사를 빙자한 산책이 끝날 무렵, 익선동의 하늘 위로 하나둘씩 전구 불빛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겨울날의 이른 어둠은 골목을 더욱 아늑하게 만듭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상인들의 바쁜 손길, 연인들의 속삭임, 그리고 추위에 발을 구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든 풍경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처럼 얽혀 있습니다. 교회 홍보라는 것이 결국 이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속삭여주는 일임을, 익선동의 밤거리는 속삭여주는 듯합니다.

 

촬영을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며, 오늘 하루 카메라 렌즈보다 제 마음속에 더 깊이 박힌 풍경들을 복기해 봅니다. 삭막한 겨울이라고 투덜댔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 낮은 골목들이 건네준 위로가 가득 찼습니다. 익선동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심은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가장 낮고 좁은 곳에서 서로의 눈을 맞출 때 비로소 전달된다고 말이죠. 오늘 찍어온 사진들이 교회의 소식지에 실릴 때, 그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이 따뜻한 골목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랍니다. 겨울의 끝자락, 익선동 한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더 이상 춥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