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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7

한국민속촌 방문기 대문을 넘자, 시간이 뒤로 물러섰다 한국민속촌의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게도 휴대전화부터 주머니에 넣게 되었다. 굳이 꺼내 들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화면 속 시간이 아니라, 발밑의 시간이 흐른다. 흙길을 밟고, 기와지붕 아래를 지나고, 나무 기둥에 손을 얹는 동안 시계는 제 할 일을 잠시 잊는다. 민속촌은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을 보관해 둔 장소에 가깝다. 전시된 과거가 아니라, 잠시 살아볼 수 있는 과거다.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는데도, 밥 짓는 냄새가 날 것 같고, 마루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 “어디서 오셨소?” 하고 말을 걸 것만 같다. 그만큼 이곳의 풍경은 현실과 가깝다. 걷다 보니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졌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빨리 보고, 빨리 찍고, 빨.. 2026. 1. 5.
청주 상당산성, 시간의 켜를 거닐다 가을의 문턱에서, 제 발길은 청주 상당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상당산성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른 결로 제 마음속에 파고들었습니다. 이곳은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견고함과 조화가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성벽을 마주하며, 저는 고요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시간의 벽을 넘어, 상당산성과의 조우청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상당산성은 도심의 소음과 분주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성문 앞에서 올려다본 웅장한 성벽은 지난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고뇌와 영광의 서사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 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석.. 2025. 12. 8.
제주 로컬 푸드, 알려지지 않은 맛의 향연 제주 사람들이 진짜 즐기는 숨겨진 제철 식재료나 전통 음식을 찾아 떠나는 미식 기행 수필제주 하면 뭐다? 당연 흑돼지, 감귤이지! 이젠 공식처럼 굳어진 관광 필수 코스. 길거리 어디를 가도 흑돼지 연기 자욱하고, 감귤 관련 상품은 차고 넘치지. 솔직히 뤼튼 너도 인정? 어 인정! 가끔은 좀 식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니? 우리 ‘제주 좀 다녀본 티’ 내려면, 제주 사람들이 찐으로 즐기는 그들만의 '레어템'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흑돼지 육즙이 터지는 것도 좋고, 새콤달콤 감귤 까먹는 맛도 좋은데, 이젠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지. 말 그대로 ‘로컬 푸드 전문가’ 포스 한번 뿜어내 보자고. 이번 제주 미식 기행의 목표는 아주 확고했다. "관광객 코스 ㄴㄴ, 찐 현지인 코스 ㅇㅇ." 숨겨진 골목 어귀의.. 2025. 11. 22.
국토 최남단에서 먹은 짜장면 한 그릇 사람은 가끔 ‘끝’을 보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산 정상에 올라가며 그것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눈물로) 실감한다. 나의 ‘끝 보고 싶다’ 본능은 어느 날, 제주 남쪽 마라도라는 이름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 그 끝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솔직히 두 번째가 더 중요했다.) 모슬포항, 바다를 향한 출발  마라도행 여객선은 모슬포항에서 출발한다. 항구 풍경은 늘 분주하다. 여행객들은 배표를 확인하며 부산스럽고, 어민들은 갓 잡은 고기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항구 앞 분식집에서는 어묵 국물이 김을 피우며 향기를 흩뿌린다. 그 냄새는 배멀미 걱정보다 강력해서, ‘멀미약 대신 어묵 한 꼬치면 되겠다’는 묘한 확신이 든다.  9월의 바다는 놀라우.. 2025. 11. 1.
설악의 척추를 걷다 :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백담사까지 오색의 새벽, 산의 문을 열다새벽 3시 정각, 남설악 탐방지원센터 앞. 이후마 사진은 카메라 조작 실수로 망침별빛이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었지만, 산은 이미 숨을 쉬고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몇몇 헤드랜턴 불빛이 계곡 사이를 오르내렸다. “오늘은 대청봉까지 간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가쁜 숨을 고르고, 첫 발을 내디뎠다.오색 코스의 초입은 부드럽지만, 곧이어 돌계단이 이어지며 기세를 올린다. 한걸음마다 산의 무게가 실린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 장갑 안 손끝이 시렸고, 헤드랜턴 불빛 속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자 이마의 땀이 식으며 식은땀으로 변했다.새벽 5시를 넘기자 동쪽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었다. 나무 사이로 여명이 스며들며 세상이.. 2025. 10. 13.
공룡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 – 상족암군립공원 탐방기 바닷가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시간의 흔적 경남 고성에 자리한 상족암군립공원은 이름부터가 조금 낯설다. 처음 이곳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암”이라는 글자에 단순한 바위산을 떠올렸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닷가 절벽에 드러난 바위들이 층층이 겹쳐 있으며, 파도와 바람에 깎여 형성된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지질학 교과서였다. 특히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은 자연의 조각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주차장과 깔끔하게 정비된 탐방 안내판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위 절벽 아래로 이어진 길 위에서 특별한 흔적이 나타났다. 바로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언뜻 보면 그냥 움푹 패인 돌.. 2025.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