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빈 여백이 말해준 것: 글을 덜어내는 용기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것들이 먼저 도착하는 아침사진을 고를 때면, 선명한 피사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피사체를 둘러싼 빈 자리, 빛이 머물다 조용히 물러난 그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그 빈자리가 미완성처럼 보였습니다. 더 채워야 할 것 같고, 뭔가를 놓친 것 같고, 설명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됩니다. 빈자리야말로 장면의 심장이고,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을 지탱한다는 것을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오래 서 있으면, 침묵이 배경음을 바꿉니다. 가만히 있던 경계선들이 서서히 숨을 쉬고, 빛과 그림자의 완급이 드러나며, 가려진 사연들이 문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글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말을 더 얹는 대신, 이미 도착해 있는 의미를 더 ..
2025. 9. 18.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현재 의미: 지구촌 평화가 시작되는 기쁜 인사
한 줄의 찬송이 건네는 첫 인사, 기쁨이 길을 연다허준님, 아침 공기를 가르는 첫 호흡처럼,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한 줄의 찬송은 겨울의 문턱마다 새롭게 태어납니다. 익숙한 선율이지만, 해마다 그 기쁨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해가 바뀌고, 세상이 흔들리고, 각자의 마음 사정도 달라지니까요. 누군가에게 이 노래는 잃었던 용기를 되찾게 하는 손난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멀어진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봉투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세상에 대한 첫 인사”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라고 묻는 대신, 기쁨이 먼저 찾아왔다고 알리는 인사. 기쁨이 먼저 손을 내밀면 두려움은 고개를 든 채로도 물러서고, 마음은 자기 속도를 조금 늦춥니다. 느려진 마음은 비로소 듣습니다. 내 옆의..
2025. 9. 18.
새벽 4시의 골목 빛: 한 컷의 사진이 수필이 되기까지
골목이 깨어나는 시각, 빛이 말을 걸다새벽 네 시, 도시의 시계는 아직 밤을 품고 있으나, 골목은 먼저 깨어납니다. 가게 셔터가 내뿜는 금속의 냄새, 축 축한 벽돌이 머금은 밤공기, 어젯밤 비가 두고 간 얇은 물막이 가로등빛을 길게 늘어뜨립니다. 그 빛은 흔히 말하는 노란빛도, 차가운 백색도 아닙니다. 사람의 체온을 닮은 빛, 지나간 하루의 잔온을 모아 어둠과 타협한 빛. 저는 그 빛이 건물 벽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와 바닥의 균열에 깊이를 만들어내는 순간, 카메라를 듭니다. 셔터 소리는 새벽을 깨우기엔 너무 작고, 제 안의 무언가를 깨우기엔 충분히 큽니다. 골목은 낮에는 통로이고 밤에는 기억입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치며 서로를 벗겨내고, 밤에는 그들이 떼어놓고 간 표정들이 벽에 붙습니다. 포장..
2025.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