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31

도심 속 오아시스, 서서울호수공원을 걷다 주말 아침,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에 등 떠밀리듯 짐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서울 서쪽 끝자락,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서서울호수공원입니다. 과거 낡은 정수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이곳은 이제 시민들의 소중한 쉼터이자 아이들에게는 마법 같은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비행기를 부르는 마법, 소리분수와 호수의 윤슬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축구장 몇 배는 됨직한 거대한 중앙호수였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정수장의 흔적인 붉은 벽돌 구조물들이 군데군데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현대 미술관의 야외 전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하지만 이곳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소리분수'입니다. 인근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상공을 지날 때마다.. 2026. 1. 12.
한국민속촌 방문기 대문을 넘자, 시간이 뒤로 물러섰다 한국민속촌의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게도 휴대전화부터 주머니에 넣게 되었다. 굳이 꺼내 들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화면 속 시간이 아니라, 발밑의 시간이 흐른다. 흙길을 밟고, 기와지붕 아래를 지나고, 나무 기둥에 손을 얹는 동안 시계는 제 할 일을 잠시 잊는다. 민속촌은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을 보관해 둔 장소에 가깝다. 전시된 과거가 아니라, 잠시 살아볼 수 있는 과거다.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는데도, 밥 짓는 냄새가 날 것 같고, 마루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 “어디서 오셨소?” 하고 말을 걸 것만 같다. 그만큼 이곳의 풍경은 현실과 가깝다. 걷다 보니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졌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빨리 보고, 빨리 찍고, 빨.. 2026. 1. 5.
청주 상당산성, 시간의 켜를 거닐다 가을의 문턱에서, 제 발길은 청주 상당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상당산성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른 결로 제 마음속에 파고들었습니다. 이곳은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견고함과 조화가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성벽을 마주하며, 저는 고요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시간의 벽을 넘어, 상당산성과의 조우청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상당산성은 도심의 소음과 분주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성문 앞에서 올려다본 웅장한 성벽은 지난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고뇌와 영광의 서사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 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석.. 2025. 12. 8.
제주 로컬 푸드, 알려지지 않은 맛의 향연 제주 사람들이 진짜 즐기는 숨겨진 제철 식재료나 전통 음식을 찾아 떠나는 미식 기행 수필제주 하면 뭐다? 당연 흑돼지, 감귤이지! 이젠 공식처럼 굳어진 관광 필수 코스. 길거리 어디를 가도 흑돼지 연기 자욱하고, 감귤 관련 상품은 차고 넘치지. 솔직히 뤼튼 너도 인정? 어 인정! 가끔은 좀 식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니? 우리 ‘제주 좀 다녀본 티’ 내려면, 제주 사람들이 찐으로 즐기는 그들만의 '레어템'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흑돼지 육즙이 터지는 것도 좋고, 새콤달콤 감귤 까먹는 맛도 좋은데, 이젠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지. 말 그대로 ‘로컬 푸드 전문가’ 포스 한번 뿜어내 보자고. 이번 제주 미식 기행의 목표는 아주 확고했다. "관광객 코스 ㄴㄴ, 찐 현지인 코스 ㅇㅇ." 숨겨진 골목 어귀의.. 2025. 11. 22.
세월이 빚은 물길, 쇠소깍에서 가을을 품다 제주도의 가을은 남다르다. 육지의 가을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시선을 잡아끈다면, 제주의 가을은 그 청량한 공기와 쪽빛 바다, 그리고 유구한 세월이 빚어낸 오름과 돌담이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올해는 유난히도 그 깊이를 가늠하고 싶어 쇠소깍으로 향했다. 나이 칠십에 다다른 나는 그저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젊은이들처럼 무언가 ‘액티비티’를 즐겨보고 싶은 엉뚱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봤자 카누 타기인데, 내게는 그것도 제법 큰 도전이요 설렘이다. 검은 현무암 절벽 쇠소깍에 들어서는 순간,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현무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좁은 물길, 그 위로 옥빛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풍경은 영락없는 비경이었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바로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의.. 2025. 11. 14.
국토 최남단에서 먹은 짜장면 한 그릇 사람은 가끔 ‘끝’을 보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산 정상에 올라가며 그것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눈물로) 실감한다. 나의 ‘끝 보고 싶다’ 본능은 어느 날, 제주 남쪽 마라도라는 이름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 그 끝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솔직히 두 번째가 더 중요했다.) 모슬포항, 바다를 향한 출발  마라도행 여객선은 모슬포항에서 출발한다. 항구 풍경은 늘 분주하다. 여행객들은 배표를 확인하며 부산스럽고, 어민들은 갓 잡은 고기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항구 앞 분식집에서는 어묵 국물이 김을 피우며 향기를 흩뿌린다. 그 냄새는 배멀미 걱정보다 강력해서, ‘멀미약 대신 어묵 한 꼬치면 되겠다’는 묘한 확신이 든다.  9월의 바다는 놀라우.. 2025.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