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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멀수록 좋다? 가까운 성당 벤치에서 발견한 세계지도 멀리 가지 않고도 멀리 다녀오는 법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깥 소리를 낮추는 종소리가 있습니다. 문간에서 한 번, 성수대 앞에서 한 번 더 호흡을 고르고, 마당 끝 벤치에 앉습니다. 그 벤치는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가집니다. 여름엔 그림자 아래 숨을 쉬고, 겨울엔 나무결이 얇게 얼어 있습니다. 그 표정들을 여러 번 마주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지나친 것은 먼 바다가 아니라, 가까운 벤치였다는 것을요. 우리는 흔히 여행을 지도의 끝자락으로 미뤄 두지만, 여행의 본질은 거리보다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배웁니다. 멀리 가야만 넓어지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이 벤치에도 앉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벤치 앞에는 오래된 회양목이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줄기에 박힌 나이테의 주름은 .. 2025. 9. 19.
금융 기사 대신 산책로에서 배운 복리: 시간이 돈보다 강해지는 순간 숫자 대신 발걸음으로 이해한 곱셈의 마법아침 산책길에선 시장 차트를 보지 않아도 배움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단지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며칠을 이어가다 보니 매일 더해지는 작은 변화가 제 눈앞에서 자라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호흡은 조금 길어지고, 보폭은 한 뼘 더 넓어지고, 같은 코스의 오르막도 덜 가파르게 느껴집니다. 그 성장은 하루하루가 똑같이 더해진 결과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체력이 스스로 체력을 키우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때 문득 깨닫습니다. 아, 이것이야말로 복리의 얼굴이구나. 돈이 돈을 낳듯, 체력이 체력을 낳고, 습관이 습관을 키우는 순환. 적금처럼 꾸준히 넣는 노력은 선형으로 보이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 체감은 곡선으로 휘어 오릅니다. 숫자로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 2025. 9. 19.
사진의 빈 여백이 말해준 것: 글을 덜어내는 용기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것들이 먼저 도착하는 아침사진을 고를 때면, 선명한 피사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피사체를 둘러싼 빈 자리, 빛이 머물다 조용히 물러난 그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그 빈자리가 미완성처럼 보였습니다. 더 채워야 할 것 같고, 뭔가를 놓친 것 같고, 설명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됩니다. 빈자리야말로 장면의 심장이고,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을 지탱한다는 것을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오래 서 있으면, 침묵이 배경음을 바꿉니다. 가만히 있던 경계선들이 서서히 숨을 쉬고, 빛과 그림자의 완급이 드러나며, 가려진 사연들이 문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글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말을 더 얹는 대신, 이미 도착해 있는 의미를 더 .. 2025. 9. 18.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현재 의미: 지구촌 평화가 시작되는 기쁜 인사 한 줄의 찬송이 건네는 첫 인사, 기쁨이 길을 연다허준님, 아침 공기를 가르는 첫 호흡처럼,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한 줄의 찬송은 겨울의 문턱마다 새롭게 태어납니다. 익숙한 선율이지만, 해마다 그 기쁨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해가 바뀌고, 세상이 흔들리고, 각자의 마음 사정도 달라지니까요. 누군가에게 이 노래는 잃었던 용기를 되찾게 하는 손난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멀어진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봉투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세상에 대한 첫 인사”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라고 묻는 대신, 기쁨이 먼저 찾아왔다고 알리는 인사. 기쁨이 먼저 손을 내밀면 두려움은 고개를 든 채로도 물러서고, 마음은 자기 속도를 조금 늦춥니다. 느려진 마음은 비로소 듣습니다. 내 옆의.. 2025. 9. 18.
새벽 4시의 골목 빛: 한 컷의 사진이 수필이 되기까지 골목이 깨어나는 시각, 빛이 말을 걸다새벽 네 시, 도시의 시계는 아직 밤을 품고 있으나, 골목은 먼저 깨어납니다. 가게 셔터가 내뿜는 금속의 냄새, 축 축한 벽돌이 머금은 밤공기, 어젯밤 비가 두고 간 얇은 물막이 가로등빛을 길게 늘어뜨립니다. 그 빛은 흔히 말하는 노란빛도, 차가운 백색도 아닙니다. 사람의 체온을 닮은 빛, 지나간 하루의 잔온을 모아 어둠과 타협한 빛. 저는 그 빛이 건물 벽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와 바닥의 균열에 깊이를 만들어내는 순간, 카메라를 듭니다. 셔터 소리는 새벽을 깨우기엔 너무 작고, 제 안의 무언가를 깨우기엔 충분히 큽니다. 골목은 낮에는 통로이고 밤에는 기억입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치며 서로를 벗겨내고, 밤에는 그들이 떼어놓고 간 표정들이 벽에 붙습니다. 포장.. 2025. 9. 18.
바닥에서 찾은 새로운 힘, 브리지 운동의 기적 바닥에 누워 시작하는 작은 용기 60대가 되니 아침에 일어나 허리가 뻣뻣하고, 엉덩이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허리와 무릎이 먼저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코어와 엉덩이 근육이 약해져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운동이 바로 브리지(Bridge)였습니다. 브리지는 요가나 재활운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동작입니다. 누운 자세에서 무릎을 세우고,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단순한 움직임이지요. 하지만 이 단순함 속에 놀라운 힘이 숨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운동이 될까?’ 싶었는데, 막상 시도해보니 허리, 엉덩이, 허벅지 뒤쪽까지 힘이 고르게 들어오며 몸 전체가 깨어나는 느낌.. 2025.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