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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왕곡마을 탐방기 동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에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왕곡마을은 동해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우리 전통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차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푸른 바다와 맞닿은 길 끝에 ‘왕곡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부터 마치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왕곡마을의 기원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조선 후기 전란과 화재를 피해 이주한 이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면서 본격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었다. 특히 함경도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마을의 언어, 풍습, 건축 양식에 이북의 색채가 짙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왕곡마을은 단순히 강원도의 한 고장이 아니라, 이북 문화가 남하해 정착한 독특한 ‘문화 교차점’으로 .. 2025. 10. 26.
청주 상당산성 탐방기 – 돌길에 새겨진 시간의 숨결 산길이 부른 아침, 첫걸음을 떼다청주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행운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오랜 세월을 품은 산성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산성은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자주 불러내는 곳이다. 산성의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단순히 운동 삼아 나온 산책객의 발걸음을 넘어, 역사의 한 장면을 밟고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이른 아침, 아직 도시의 소음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발걸음을 옮겼다. 초입에 들어서자 가을 햇살이 솔잎 사이로 가볍게 쏟아졌다. 솔향에 섞여 온도 낮은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1천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오르내렸고, 그들의 이야기가 발자국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길이다. 한양을 지키던 남한산성에 비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2025. 10. 22.
설악의 척추를 걷다 :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백담사까지 오색의 새벽, 산의 문을 열다새벽 3시 정각, 남설악 탐방지원센터 앞. 이후마 사진은 카메라 조작 실수로 망침별빛이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었지만, 산은 이미 숨을 쉬고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몇몇 헤드랜턴 불빛이 계곡 사이를 오르내렸다. “오늘은 대청봉까지 간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가쁜 숨을 고르고, 첫 발을 내디뎠다.오색 코스의 초입은 부드럽지만, 곧이어 돌계단이 이어지며 기세를 올린다. 한걸음마다 산의 무게가 실린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 장갑 안 손끝이 시렸고, 헤드랜턴 불빛 속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자 이마의 땀이 식으며 식은땀으로 변했다.새벽 5시를 넘기자 동쪽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었다. 나무 사이로 여명이 스며들며 세상이.. 2025. 10. 13.
공룡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 – 상족암군립공원 탐방기 바닷가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시간의 흔적 경남 고성에 자리한 상족암군립공원은 이름부터가 조금 낯설다. 처음 이곳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암”이라는 글자에 단순한 바위산을 떠올렸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닷가 절벽에 드러난 바위들이 층층이 겹쳐 있으며, 파도와 바람에 깎여 형성된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지질학 교과서였다. 특히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은 자연의 조각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주차장과 깔끔하게 정비된 탐방 안내판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위 절벽 아래로 이어진 길 위에서 특별한 흔적이 나타났다. 바로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언뜻 보면 그냥 움푹 패인 돌.. 2025. 10. 3.
고성 통일전망대 탐방기 동해 최북단에서 만나는 분단의 현장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자리한 통일전망대는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는 38선과 가까운 곳이자,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장소다. 속초에서 북으로 약 50km, 고성군의 최북단까지 차로 달리면 닿을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남북 분단의 현실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인출입통제선, 이른바 ‘민통선’을 통과해야 한다. 신분증 확인을 거친 뒤 군의 안내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절차 자체가 이미 일상적 공간과는 다른 특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도로 양옆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철책선과 감시초소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장면은 한국전쟁 .. 2025. 9. 29.
실패한 축제의 뒷이야기 성공담 뒤에 가려진 또 다른 기록 축제는 왜 늘 성공해야만 하는가그러나 실패한 축제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실패의 기록은 단순히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더 나은 행사를 만들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참여 부족, 과도한 예산 집행, 무리한 기획, 날씨와 같은 변수를 간과한 준비 부족 등,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 속에는 우리 사회가 축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떤 점을 간과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는 배움이 제한된다. 반대로 실패를 솔직히 기록하고 분석할 때, 비로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실패한 축제의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우리가 흔히 접.. 2025. 9. 27.